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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에 우리글 보급 앞장
[역사 속 보령인물-9] 임재혁(1927~1990)
2009년 06월 10일 (수) 09:29:24 김종윤 기자 jjong@hanmail.net
   
임재혁(1927~1990) 교육자, 독립운동가, 서예가 호는 사백, 한갈, 만파

1941년 전주사범을 졸업하고 1946년부터 교직생활에 들어가 미산, 웅천 등지에서 교사생활을 했으며 1984년부터는 보령군 교육장을 지냈다. 보령군 주산면 야룡리에서 임옥빈과 김상천의 외아들로 태어난 선생은 일제시대에 독립사상이 투철해 항일운동에 참가했다가 1945년 2월 피검돼 전주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했으며 8․15 해방과 함께 풀려났다.

한국교육자대상을 비롯해 많은 수상을 했으며 서예에도 뛰어나 충남교육서예가협회장을 역임했다. 대전 유천국민학교장, 대동국민학교장을 거쳐 산내국민학교장 재임중 1990년 지병으로 타계했다.

선생은 대곡서당, 주산정사, 옥성학교를 설립한 증조부와 고조부의 영향을 많이 받아 유년시절부터 맹자, 시경등을 익혔으며 사백이란 호에서 알 수 있듯이 생각이 깊고 곧으며 순백하고 의지와 집념이 강했다.

일제의 식민지하에서 독립하기 위해서는 범국민적인 교육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해 전주사범학교에 입학했으며, 재학중에 일제에 의해 말살돼 가는 민족유산과 전통문화에 울분을 참지 못하고 1942년 ‘우리회’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해 항일운동을 하게 된다.

이때 같이 한 동료로는 이일남, 김학길 등이 있는데 이일남 등 일부는 만주 독립운동에 가담해 정보를 교환하면서 우리회 회원들로부터 각출한 군자금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국내에 남아있던 임재혁 선생등은 야간에 주민과 학생들에게 민족의식 고추와 조국독립의 필연성을 설명하고 일장기를 말살을 담당했다.

선생은 이와는 별도로 조영철, 박종환 등과 같이 석류회를 조직해 서화를 통해 우리 말과 역사를 보급하다 일경에 의해 치안유지법과 육해군형법 위반으로 전주 형무소에 수감된다. 선생은 옥중에서도 의기를 잃지 않고 한학자인 안중산 선생으로부터 한시작법을 배우며 오직 조국의 해방을 염원하며 지냈고 8월 15일 해방과 함께 석방됐다.

“교육은 이론만 전개해서는 안된다”

선생은 사범학교 졸업후 “교육은 이론만 전개해서는 안된다. 항상 드높은 이상으로 지향하는 사랑을 동반한 현실이다”라는 굳은 신념을 가지고 1946년 미산국교에 교사로 첫 출발을 하게 된다. 이후 덕명, 홍주, 웅천, 대남국교와 계명중학교 교사를 거쳐 주산, 천안남산국교 교감을 지내는 동안 학습지도 개선에 앞장섰으며 학습 부진아의 학습성취 동기와 육성을 몸소 실천했다.

충남 교육연구원 조사실장으로 재직시에는 ‘복식학급 운영의 실제’라는 책을 발간해 도서벽지에 보급해 국내 처음으로 복식학습 운영의 지침서로 쓰이기도 했다. 또 민족정신 함양을 위한 독서자료로 국난을 극복한 선조들의 슬기와 용기를 모아 ‘나라를 지킨 별들’, ‘어사 박문수’등의 책을 발간했고, 1973년 충무교육원 창설당시에는 전통문화, 예절지도의 연수교재 등을 집필했다.

논산 반월국교 교장으로 재직시에는 학교에 무인 판매점을 설치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선행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한 것이 민족관 설치와 함께 ‘새교육’지에 소개된 바 있다.

선생은 충남 교육위원회 장학관을 지내고 보령군, 대천시 교육장으로 부임해 잊혀져가는 우리 전통문화의 계승과 발전을 위해 혼신의 힘을 쏟았다. 그 노력의 일환으로 사멸돼 가는 교육자료와 향토문화, 유산, 풍속, 옛 지명찾기, 전설발굴 등을 통해 민속연구에 심혈을 기울인 결과 민족정신을 고양시키다 일제에 의해 폐교당했다고 전해 내려오던 사립 옥성학교를 고문서와 후손등의 증언을 토대로 발굴해 학교위치, 교육과정, 교과서, 학생 및 교사명단 등을 확보해 이철원, 박태현, 최봉규 등의 애국지사를 배출한것을 확인했다.

선생은 20세의 젊은 나이로 미산국교에 첫 발령을 받아서는 일제의 박해 속에서도 학생들에게 한글과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강조해 민족의 얼을 일깨우고, 젊은 시절에는 학력증진, 교수 학습개선, 충효정신을 일깨우며 45년 이라는 한결같은 시간을 후세들의 교육에 헌신했다. 선생의 이 같은 노력에 국가는 동백장이라는 국민훈장으로 보답을 하지만, 대전산성국교 교장으로 재직중이던 1990년 지병으로 타계했다.
 
묘소는 주산면 야룡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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