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대선과정에서 노무현, 이회창 양대 후보 진영이 마지막까지 화력을 집중했던 사안은 아마도 ‘행정수도' 이전을 둘러싼 공방전이 아니었나 싶다. 폭로전과 색깔론이라는 네거티브 선거 전략이 먹혀들지 않자 그나마 정책대결의 계기로 관심을 불러일으킨 본 논제마저도 그 본질에서 벗어나 득표공학적 차원에서 비롯된 듯한 ‘수도권 공동화론'이니 ‘집값 하락'과 같이 다분히 단세포적이며 선동적으로 흘러갔던 측면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후보자들은 표현과 강도의 차이는 있었으되 지방분권 관련한 공약을 경쟁적으로 제기하면서, 어찌 보면 이번 대선에서 가장 큰 관심의 대상은 분권과 분산이라는 거대담론을 국가적 현안으로 일정부분 외재화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며, 이는 바로 더 이상은 중앙집권과 서울 및 수도권 집중구조의 폐단이 방치되어서는 안 된다는 반증이기도 하고, 한국사회의 시대적 명제의 의미로도 이해된다.
이처럼 '행정수도의 충청권이전'공약은 그 자체만으로도 지방분권과 분산의 상징성을 담보하고 있음에도 왜곡된 관점에서 이를 공박함으로써 스스로 제시한 공약을 부정하는 자가당착의 모순에 빠져든 사태가 발생하기도 한 것이다.
한편 이러한 심각한 문제점에 대응하여 대전, 충남, 충북의 충청권 85개 시민단체들은 12월 17일 긴급 공동기자회견을 통해 반분권적. 반분산적 '서울공동화론'선동을 중단할 것을 촉구하기도 하였다.
이제 대한민국은 ‘서울공화국'이라는 대내외의 조소적인 비유에서 알 수 있듯이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에는 과잉과 과밀로 인한 엄청난 낭비와 비효율이 초래되고 있으며, 상대적으로 지방은 부족과 과소 때문으로 침체와 존립위기로까지 이어져 부정적 현상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조국근대화를 내세운 산업개발독재 시대에 크게 평가받던 집중과 집권의 '효율성'이 이제는 오히려 지방자치의 정착을 저해하고, 국가의 균형성장을 가로막는 커다란 장애요인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현행 지방자치법 체계도 지방분권체제보다는 중앙집권체제 선호세력의 영향력이 크게 반영된 결과로 볼 수 있다.
사무배분의 원칙과 방법이 제대로 규정되어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강력한 중앙통제 체제로 지방자치단체의 입법권과 행정권을 제약하는 측면이 강하다고 분석된다.
따라서 전향적인 법개정을 통해 국가와 지방 사이에 기능과 인적, 물적 자원의 적절한 배분이 이루어져 지자체의 권능이 보장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더불어 99년부터 발효되어 운용되고 있는 '권한이양촉진법'(약칭)도 과감한 분권화라는 관점에서 볼 때는 그 실효성에 많은 의문점이 제기되어왔음에 비추어 역시 재검토가 필요한 사항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동안 지방분권 관련해서는 다양하고 산발적인 논의의 틀과 과정을 거치면서 이번 대선공간에서 광역단위의 연대조직과 이 연대기구가 참여하여 다시 전국규모의 ‘지역균형발전과 민주적 지방자치'를 지향하는 ‘지방분권국민운동'이 결성되어 한나라, 민주, 민노 3당의 후보들과 “지방분권 국민협약"의 체결을 이끌어내는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는가 하면, 전국 동시 캠페인과 '지방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취지의 플래카드 걸기 운동과 언론기고 등 다양한 활동의 전개로 일반인들의 인식확산을 기하면서 사회운동의 큰 흐름으로 자리매김하였다고 평가된다.
현재의 지방분권운동은 3가지 커다란 정책방향을 제시하고 있는데, 첫째는 기관위임사무 중심의 집행권 이양이 아닌 중앙정부의 결정권 이양과, 둘째로 재정 분권적 차원에서 지방정부에 세원을 귀속시킬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역혁신의 필수적 전제조건인 지방에 우수한 인적자원의 할당을 관철하는 내용이 그것이다.
이에 따라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특별법의 제정은 필수적이다.
그럼에도 아무리 분권과 분산이라는 주제가 우리 사회의 거대담론으로 자리 잡고 시대적 과제로 부각되었다 해서 중앙집권·서울집중이라는 구조적 모순이 순풍에 돛을 단 듯 매끄럽게 극복될 리는 만무하다. 집권과 집중의 구도로 오랫동안 기득권에 안주해온 사회체제가 일순간에 허물어지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합의가 전제되어야함과 더불어 권력주체세력의 혁신적 의지와 노력이 절대적으로 요청되고 있다.
이와 같이 앞으로 지방분권의 흐름에는 다양하고 강력한 장애요소들이 예견된다.
분권과 분산의 우선순위에 대한 근본적인 논란과 주체들의 혁신문제를 비롯해서, 자칫 분산이 지역과 집단이기로 폭발적으로 전이될 개연성 등이 그것이다. 벌써부터 ‘행정수도'유치경쟁의 이상과열이나 특정지역 부동산가격의 들썩임이 그러한 사례들로서 심각한 폐해와 우려를 낳고 있다.
낡은 패러다임을 혁파하여 골고루 잘 살자는 분권운동의 취지가 자기만 큰 파이조각을 차지하겠다는 이기적 쟁투로 변질되어, 다시 분권반대세력에게 집권·집중에 대한 역공의 빌미를 제공하는 비극적 사태는 피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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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5.2 목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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