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 여론조사를 말한다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여론조사로 대선후보를 선출하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정치의 후진성을 상징적으로 대변한다.”

기자는 지난 18일 오전 10시 국회언론발전연구회(대표의원 고흥길)가 ‘대통령 선거와 여론조사 보도’라는 제목으로 주최한 토론회를 취재하고 있었다. 이날 발제를 맡은 김헌태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소장이 “여론조사는 결코 만능(萬能)이 될 수 없다”고 언급한 끝에 이렇게 도발적인 화두를 던졌다. 

그렇다면 역설적으로 여론조사 전문가가 “여론조사를 맹신하지 말라”고 강조하고 나선 까닭은 무엇일까?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거니와, 한국정치는 지금 여론조사라는 종교에 푹 빠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선 한나라당은 대선후보 선출을 위한 예비경선에서 이미 여론조사 비율을 20% 반영하기로 했고, 범여권은 범람하고 있는 대선주자를 1차적으로 ‘추려내기 위한 방법’으로 여론조사를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지난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후보가 후보 단일화를 위해 여론조사 방식을 활용한 것은 여론조사 역사상 가장 불행한 일이다. 특히 단 1%라도 앞서는 후보가 이기는 것으로 한다는 합의는 국민들에게 여론조사에 대한 아주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처음이니까 문제의 심각성을 서로 잘 모르고 그냥 넘어갈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패배한 후보가 승복하지 않고 이의를 제기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실제로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패널 대다수가 김 소장과 비슷한 입장을 보여주었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하는 언론의 보도행태에 대한 비판적 지적도 많았다. 그들의 주요 발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여론조사를 통해서 드러난 민심의 흐름과 경향을 읽어내고 비전이나 전략을 수립하려는 정치권의 자세가 아쉽다. 도리어 마음에 들지 않는 후보를 갈아치우기 위해 여론조사를 악용하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은 짓이다. 여론조사를 정치에 ‘활용’하려고 해야지 ‘의존’하려고 해서야 되겠는가.”(이상일 TNS코리아 이사)

“정치권과 언론계가 여론조사에 대한 맹신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여론조사가 2002년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를 위한 도구로 활용된 것은 난센스 중의 난센스이다. 올해도 각 당이 여론조사를 예비경선에 도입하려고 하고 있는데,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여론조사 결과에 대한 보도 과정에서 언론의 ‘과도한 대우’가 분명히 존재한다. 여론조사의 ‘거품’을 빼야 한다. 0.1%라는 오차범위 내의 차이를 가지고도 ‘대세’나 ‘추격’이라는 주관적 표현을 동원해 보도하는 것은 문제이다. 여론조사 결과는 판세와 흐름을 읽어내는 참고자료일 뿐이다.”(황정미 세계일보 정치전문기자)

여론조사 결과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고 부화뇌동(附和雷同)하는 정치권과 언론계가 귀를 기울여야 할 메시지이다.

/정지환 기자 ssal@ytongs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