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사기, 이른바 보이스 피싱(Voice Fishing)은 이젠 개인이 조심해야 할 선을 넘은 듯하다. 1년 동안 신고된 피해액만 371억. 지난 7일에는 보이스 피싱을 당한 70대 노인이 자살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대법원장까지 당할 정도로 보이스 피싱의 수법과 속임수는 날로 교묘해지고 있다.

보이스 피싱은 과거 대만 범죄조직들이 자국민을 상대로 사용했던 사기수법인데 단속이 강화되자 현금이체한도가 높고 대포통장, 대포폰 개설이 비교적 쉬운 한국으로 방향을 돌렸다. 대부분 중국ㆍ대만 등 해외에서 현지 전화망을 이용해 사기행각을 벌이기 때문에 단속도 쉽지 않다.

10년 전부터 보이스 피싱에 시달렸던 대만은 대포통장과 현금입출금기(ATM), 그리고 전화선을 집중적으로 관리해 금융사기의 근절을 꾀했다. 주한대만영사관 홍보부에 따르면, 대만은 ATM의 1회 계좌이체 한도를 우리 돈 1천만원에서 300만원으로, 1회 인출한도를 300만원에서 90만원으로 줄였다.

또 사기에 넘어가 송금을 했더라도 영수증을 가지고 있다면 간단한 절차만으로 돈을 되돌려 받을 수 있게 했다. 통장 개설도 까다롭다. 통장을 만들려면 주민증과 건강보험증 등 신분증 2개 이상을 제시하고 얼굴 사진을 찍어야 한다. 전화사기 신고센터도 운영해 조기에 문제를 해결하여 피해를 최소화하는데 주력했다.

정부의 한 발 늦은 보이스 피싱 근절대책

우리 정부도 금융사기를 막기 위한 대책을 궁리중이다. 지난 19일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정현안정책조정회의에서 ‘보이스 피싱 근절대책’이 논의됐다.

정부는 중국ㆍ대만과 국제적인 공조와 협력을 강화하고, 특별단속을 실시하는 등 전화금융사기에 대한 단속을 더욱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또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CD/ATM기를 통한 현금 인출 및 이체한도 하향 조정 △외국인의 예금계좌 개설요건 강화 △사기자금 지급정지제도 도입ㆍ운영 △등록된 주의 계좌에 대한 자금흐름 특별관리 △지급 정지된 피해자금의 조기 환급을 위한 입법 검토 등의 여러 방법을 모색했다. 또한 대포통장 사용에 대한 처벌 근거가 없어 그동안 수사에 어려움을 겪어온 만큼 대포통장 양도행위 처벌근거를 마련해 범죄를 근절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정부의 이같은 대책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피해자가 4천명이 넘을 때까지 뒷짐만 지고 있다가 이제 와서 부랴부랴 대책을 내놓은 것은 ‘뒷북’이 아니냐는 것이다. 더군다나 대포통장 매매의 처벌 근거가 되는 법안은 지난해부터 국회에 계류중이다.

인터뷰 / 이근식 의원의 답답한 심경 토로

“정부와 국회의 소극적 자세가 피해 키웠다”

금융사기의 핵심수단인 대포통장을 처벌하는 법안이 이미 지난해 국회에 발의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중도통합민주당 이근식 의원(서울 송파구 병)은 지난해 6월 타인 명의 통장인 대포통장을 매매 또는 광고 시 징역 3년 이하, 3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는 ‘금융거래계좌 양도행위 등의 금지에 관한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현행법으로는 대포통장을 매매한 사람을 잡을 수는 있지만 통장이 범죄에 사용될 줄 몰랐다고 잡아떼면 처벌이 안 되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처벌근거를 마련해 금융사기를 근절하려는 노력은 법무부의 ‘공식의견’으로 인해 제동이 걸렸다고 이 의원은 전했다.

“작년 12월 13일 재경위에서 법안 심사가 있었지만 재경부는 현행법으로도 충분히 대포통장의 처벌이 가능하다는 법무부의 공식의견을 받았다고 전해왔다”는 것. 이 의원은 “법무부가 법안의 취지를 잘 모르는 것 같다”며 “내용을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법무부 의견을 그대로 받아들인 재경위의 자세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2월, 국회에서는 2월에 법무부 차관을 불러 법안에 대한 공식입장을 들어볼 계획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법안은 2월, 4월 국회에 안건으로 올라오지 못했다. 6월 임시국회에서는 60건의 안건 중 60번째로 가까스로 오르기는 했으나 그나마 심사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의원은 “법안의 시의성과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국회와 정부가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해온 점이 처리를 늦춘 가장 큰 이유”라며 정부의 안이한 태도를 비판했다.

이 의원은 “모든 사기가 대포통장으로 통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대포통장의 피해가 심각한 실정인 만큼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법안이 통과되면 대포통장을 사고파는 행위는 물론 광고행위까지 처벌하게 되므로 유통이 급격히 줄 것이라는 게 이 의원의 설명. 이를 위해 “국회 해당 상임위를 비롯한 관련 부처의 적극적인 자세를 강조할 계획”이라고 이 의원은 덧붙였다.

/조혜령 기자 cho@ytongs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