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여사 또순이!’
3남매, 손 한 번 잡아주지 못하고 키워 ‘우리 엄마처럼 독한 사람 없을거야!’
빵 한 개로 점심을 때우려 해도 아이들의 얼굴이 어른거려 먹지 못하던 여린 어머니
5대 충남정신인 ‘충효’ ‘절의’ ‘선비’ ‘예의’ ‘개척정신’.
충남정신발양보령시추진협의회는 얼마전 충남 5대 정신을 이어가기 위한 효자·효부, 모범가정·청소년에 대한 표창식을 가졌다.
이 곳에서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이날 표창 수상자 중 한 명인 효부상수상자, 김 영(60세, 청라면)씨 이다.
마을 어른들이 추천한 효부인 만큼 부모 공경과 이웃에 대한 사랑실천 등 경로효친이 남다른 여성일 것이다. 그러나, 이에 더해 무엇인지 모를 당당함이 있었다. 짧은 컷트머리에 서설이 내린 듯 희끗희끗한 은빛머리칼, 이제 막 육순을 넘겼다는 그녀의 말이 무색할 정도로 젊은 사람들에 뒤지지 않을 만큼 당차 보였던 여성. 행사를 마치고 며칠 뒤, 경치 좋은 곳 너른 마당만큼 넉넉한 인심으로 생활하고 있다는 그녀의 집을 찾아 한참 팔순이 넘은 시어머니, 손아래 동서와 함께 메주 띄우기에 바빴던 그녀를 만나 그 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그녀는 오래 전 고향을 떠났었다. 물론 주말이면 이 곳에 항상 오고가긴 했어도 말이다.
“지금까지 한가로이 앉아 나 자신을 뒤돌아 볼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었죠. 내게 주어진 삶이 그랬던 것 같아요. 이제부터는 내 삶을 뒤돌아보면서 살아야죠.” 그녀가 꺼낸 ‘내게 주어진 삶이 그랬던 것 같다’는 말.
그 말속에는 참 많은 것들이 내포되어 있다. 60평생, 아니 결혼 후 39년을 살아낸 그녀의 인생이 담겨있다.
결혼 전 그녀의 부모는 그녀의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못하게 할 만큼 귀하게 딸을 키웠단다.
“집안이 비교적 부유한 편이었어요. 그리고 부모는 당신들의 자식보다 귀한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잖아요. 저는 직장에서 월급을 받으면 집에 가져다 준 적이 없어요. 모두 주변사람들 몫이었죠.”
그랬던 그녀가 5남매 중 큰아들이며 3대 장손인 신동훈(65세)씨에게 시집을 오면서 어쩔수 없이 변할 수 밖에 없었다.
“아버님이 농협 일과 뽕나무 재배사업을 함께 하고 계셨어요. 남편은 직장에 다녔었구요.”
넉넉한 듯 보이는 집안이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시조모, 시부모, 시누이·시동생 4명, 그리고 뽕나무 재배농장에서 일하는 일꾼까지.
막 시집 온 새댁 김씨는 그 때부터 80, 90명의 식사를 준비했었어야 했다고 말한다.
“시댁 어른들이 엄격했어요. 일을 하다 코피를 쏟는 일이 허다했죠. 지금 생각하면 아득합니다.”
그 일을 5년여, 시아버지가 사업을 점차 정리하게 되자 김씨는 대천시내로 나와 제과 총판을 하기 시작했다.
“남편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있었고, 저는 제과 총판을 시작했는데 정말 그때는 잘됐어요. 4년 정도 그렇게 생활을 했죠.” 그 후 그녀의 가족들은 여차저차 좋지 않은 일을 당하고 그 동안의 수고한 대가를 아프게 치루면서 힘든 서울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74년경 이었던 것 같습니다.”
빈털털이가 된 그녀는 서울에서 하우스의 야채단도 묶고, 남자 일당 1만 8천원이었던 샤시 공장에서 남자 두 몫의 4만원 일당을 받는 직공으로 일도 했다.
여자도 못할 일이 없다며 지게를 졌고, 노상에 앉아 바지락을 까서 팔며 산으로 나무를 하러 갔고 그런 결과로 허름한 그녀의 집에는 항상 나무 땔감이 쌓여 있었다고 말했다.
“갓 시집왔을 때, 아무리 힘들어도 친정에 갈 때는 더 화사하고 예쁘게 치장하고 갔어요. 힘든 표시를 안하려고요. 하지만, 서울에 와서는 어쩔 수가 없더군요. 3년간 친정어머니가 아이들을 맡아주셨어요. 그러다가 아예 올라오셔서 아이들을 봐 주셨죠.”
이 후 그녀는 한 화장품 방문판매사원으로 나섰으며 당시 다른 사람이 8, 9만원의 수당을 받을 때 50, 60만원의 수당을 받을 정도로 밤 낮 없이 일을 했다.
“지금 34살 먹은 작은아들이 3살 때 였어요. 자전거 앞 자리에 태우고 구로 1, 2, 3공단과 독산동 등을 밤낮없이 돌아다녔죠. 그 때 제가 머리를 올리면 고 육영수 여사를 닮았다고, ‘육여사 또순이’라는 별명을 사람들이 지어 주었죠.”
79년 그녀는 세일즈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80년도부터는 건설현장에서 일명 ‘한밭집’을 운영했으나 한밭집 운영으로 그 당시 650만원의 빚을 지게 된다.
“80년도에 시아버지께서 돌아가셨어요. 860만원의 빚을 남겨 놓고요. 그 빚을 청산하지 못한 채 제가 또 빚을 지게 됐죠. 그 후 다른 분의 소개로 한밭집을 다시 시작했고, 그런데 또 다시 사기를 당했어요.”
하지만 그녀는 좌절하지 않았다. 오뚝이처럼 또 다시 일어나 한밭집을 시작했고 결국 그 규모를 늘려가기 시작했다.
“올 해 2월까지 한밭집을 운영했어요. 그리고 접었습니다. 작년에 4억 부도를 맞고 6월에는 중환자실까지 입원을 해 있었죠. 소송도 해 보았구요. 하지만 별 수 없었어요. 실패를 거듭하며 열심히 생활했는데 …, 결국 이런 일이 겹치니까 내가 겪어야 할 일이 이것까지인가 싶더라구요. 지금까지 아이들 키우고 가족 건강하게 생활한 것에 감사하자 하고 마음을 비우니까 편해지더군요. 그리고, 아주 귀향을 했습니다.”
김씨의 삶은 참 힘들었다. 3남매의 손을 한 번도 잡아주지 못하고 키웠으며 그래서 아이들은 “우리 엄마처럼 독한 사람 없을거야”라며 엄마에게 투정 아닌 투정도 했단다. 그러나 모두 훌륭하게 잘 성장해 주었다.
또한 여느 사람들은 한 번쯤 겪었을까 싶은 일을 그녀는 습관처럼 겪었다. 그러나 그녀는 다시 재기하고 재기하면서 지금까지 살아냈다.
이런 그녀의 인생역정 위에 특히 그녀가 주목을 받는 부분은 또 다른 데 있다.
20여년 전 장 파열로 3, 4개월뿐 가망이 없다는 판정을 받았던 시어머니를 김씨는 서울로 모시고 와 살고 있던 집 보증금을 빼서 병간호를 시작했고, 그 결과 6개월 여 만에 건강한 모습으로 되돌려 놓았다.
“장례 모실 준비를 하라고 했어요.업혀서 모시고와 걸어서 내려가셨습니다. 지금은 건강하게 살고 계십니다.” 또한 김씨가 결혼 할 당시, 김씨 남편 밑으로 4명의 동생이 있었다.
“저는 지금도 기회가 된다면 공부를 하고 싶어요. 주변 식구들이 배우지 못하면 답답할 것이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공부를 시켰죠.”
큰 시동생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시댁 어른들이 책임을 져 주었다. 그러나 김씨는 그 어려운 살림에도 나머지 동생들의 대학교육을 책임졌다.
특히 시누이들의 대학교육을 마치게 했으며, 또한 초등학교를 다니다 공부를 중단했던 막내 시동생을 공부시켜 신학대학원까지 졸업시켰다. 그리고 그들은 현재 전부 출가를 했고, 그 과정에서도 김씨의 도움이 단연 우선이었다.
특히 시댁의 살림 뿐 아니라 부유했던 친정이 30여년 전부터 가세가 기울면서 그 살림도 김씨가 떠 맡게 되었으며 친정동생들 또한 그녀가 공부를 시키고 출가를 시켰다.
또한 그녀는 오랜 시간 한밭집을 운영하면서 20여년 동안 시댁주변 농가의 쌀을 대량으로 주문해 쓰기도 했다. 더욱이 시세보다 가마당 1만원 이상을 더 쳐준 가격으로 말이다.
“하루에 쌀 5, 6가마씩 밥을 해 댔어요. 그래서 마을에서는 우스개 소리로 저희들 때문에 부자가 된 농가도 있다고 말들을 하셨었죠.”
또한 김씨는 고향을 떠나 생활했지만 항상 고향어른들을 챙기는 것은 물론, 결혼 전 월급을 모두 털어 이웃을 위해 사용했던 일을 그 동안도 꾸준히 해 왔으며 지금도 그 일은 계속되고 있다.
“저도, 남편도 부모로부터 위함을 받고 자랐습니다. 그것이 잘못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인생 밑바닥부터 경험하라고 제 삶이 그렇게 어려웠나 봅니다.”
하루 벌어 하루를 살고, 굶기를 밥먹듯이 하며 남모르게 많은 눈물을 흘렸다는 김씨. “빵 한 개로 점심을 때우는 일이 많았죠. 하지만 그 빵 한 개도 아이들의 얼굴이 어른거려서 먹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생활이 힘들었어도, 김씨는 차 한잔, 교통비 한번 도움 받아 본 적이 없단다.
그녀가 열심히 일한 대가가 아니면, 그녀는 불편했으며 항상 자신이 먼저 계산하고 이웃에게 베풀어야 마음이 편했기 때문이다.
오랜 동안 정말로 바쁜 생활탓에 변변찮은 곳 여행 한 번을 가보지 못했다는 김씨.그리고, 이제 그 긴 여정을 끝마치고 마음 넉넉한 고향에서 노후를 준비하는 사람.
김씨는 요즘 뜨게질에 흠뻑 빠져있고, 곧 대천시내에 가게를 내려한단다. “조금 있으면 손뜨게 강사 자격증이 나와요. 다른 곳에는 전혀 시간을 내지 못했는 데 유난히 손뜨게에 관심이 있다보니, 시간을 내서 배웠습니다.
노후는 손뜨게와 조금 남아있는 논·밭에서 남편을 도와 농사꾼의 아내로 살아갈 것 같습니다.” 너른 마당, 유난히 방이 많은 집.
이유는 명절 때가 되면 이 곳으로 가족들이 다 모이기 때문이란다. 다 모이면 50명도 넘는단다. 비록 자신의 배는 채우지 않아도, 가족들과 이웃들을 위해 베품을 아끼지 않았던 김씨.
처음 그녀에게서 느꼈던 그 당당함이, 이런 오랜 역경을 자신에게 주어진 삶이라며 겁 없이 이겨낸 그 당당함이 아닐까.
작은 어려움에도 쉽게 지치는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 김영씨의 삶은 큰 교훈이 될 듯 하다.
/이순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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