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의 5.18은 그 정신이 사라지고 뻔뻔함과 염치없음이 유난히 두드러진 행사가 되고 말았다. 5.18정신과 무관하게 살아온 사람들이 갑자기 대통령이 되고 싶은 욕심에서 5.18정신의 실천자가 된 것처럼 설치거나 5.18정신을 땅에 떨어뜨려 참담한 현실에 빠뜨린 국정운영의 장본인들이 부끄러움도 잊은 채 자신들의 추악한 정치공학적 주판알만 튕기고 있는 것이다.

5.18이 이렇게 타락한 현실에 직면하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5.18의 항쟁주체들이 생업 때문에, 5.18의 전국화와 세계화의 명분 때문에 5.18정신의 계승주체의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뒷전으로 물러나 있었던 탓이 크다. 목숨을 던져 민주화와 통일의 길을 열었던 윤상원  동지를 비롯한 열사들의 죽음을 껴안고 살아가는 항쟁의 주체들이 당당히 현실의 무대에서 자기목소리를 냈어야 했다. 이들이 무대 뒷전으로 물러나 앉으면서 광주항쟁의 상징인 ‘윤상원상’은 어느새 실종되고 군사정권의 폭압에 정면으로 맞서 싸웠던 5.18 정신이 슬그머니 ‘평화와 인권’이라는 정체불명의 색깔로 변모하게 된 것이다.

이런 과정은 열사들이 스스로 목숨을 역사의 제단에 내던져 만들어낸 민주화의 성과를 일부 정치꾼들이 독차지하고 자칭 민주화세력을 자처하는 일부세력들이 아무 준비 없이 국민경제의 대문을 활짝 열어놓는 한미FTA를 추진하는 상황까지 만들어내고 만 것이다. 사실 이들은 엄혹했던 시절에 제대로 투쟁했던 사람들이 아닌 유화국면에 비로소 뛰어들었거나 군사정권에 참여했던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역사와 겨레 앞에 정직하게 설 수 있겠는가? 말잔치와 잔 계산으로 권력을 가질 수 있었는지 모르지만, 국민들의 평가는 끝났다. 정말 유감스러운 것은 대다수 국민들이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목숨을 내던져 싸운 이들을 잊은 대신에 적당하게 편안히 참여한 자들을 민주화세력의 전부로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면 2007년 5.18을 우리는 어떤 마음, 어떤 자세로 지내야 하는가. 첫째도 둘째도 참회와 반성이다. 열사들이 당신들의 주검을 딛고 앞으로 전진하라는 유언을 남겼지만, 이를 제대로 실천하지 못해 마침내 민주화세력이 나라를 망쳤다는 비난까지 듣게 된 현실은 우리들이 철저하게 열사들의 정신을 이어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민의 고통과 불행이 극심한 이 땅의 현실이 증거하는 것은 민주화세력의 무능과 실패를 말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민주화의 정착에 안주한 나머지 5.18정신을 모욕하는 정치공학적 계산을 그만둬야 한다. 지금 광주에는 한국사회의 위기를 극복하고 국민생활을 안정시킬 획기적인 대책마련 보다 권력을 내줄 수 없다는 ‘권력의지’만 남아있다. 80년 5월에는 신군부에 맞서 목숨을 걸고 싸웠을 뿐 달콤한 권력에의 유혹은 없었다. 잔 계산은 오래가지 못하고 권력의지만으로 권력을 장악할 수 없다. 우리 시대의 역사적 과제와 임무를 당당하게 국민들에게 호소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더 이상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현실정치의 무대를 기회주의자들에게 내어줘서는 안 된다. 싸워야할 때 골방에 숨어버리거나 외국에 내빼고 호의호식했던 자들이 5.18정신을 올바로 계승할리 없다. 민주화의 진전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이 중국의 추격으로 경제적으로 위기국면에 빠져들고 정치적으로 부패하여 사회갈등과 양극화가 심각한 것은 당당한 한국사회의 지도력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이제 5.18항쟁의 주체들과 민주화를 위해 진정으로 싸웠던 사람들이 앞으로 나서야 한다.

우리는 지난 수십 년간의 피눈물이 어려 있는 민주화의 도정이 참담한 실패로 끝내게 할 수 없다. 대다수 국민들은 일부 민주화세력들의 무능과 부패에 실망한 나머지 군사정권의 핵심세력의 손을 들어주려 하고 있다. 그래서는 안 되며 그럴 수는 없다. 2007년의 5.18이야말로 열사들이 우리를 역사와 현실의 무대로 불러내는 부활의 무대가 돼야 한다. 그 첫 작업으로 사라진 윤상원상을 우선 되살려 내는데 힘을 모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