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평양에서 열린 남북 경협추진위의 합의사항을 보면 과연 우리 정부가 북한 핵을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는지?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한국정부는 북한에 40만 톤의 쌀을 차관형식으로 제공하고, 경공업자재 등 2천억 원 이상을 제공한다는데 북한과 합의했다. 그러나 이것은
불과 두 달 전 베이징의 6자회담에서 북한의 핵 폐기 조치의 이행정도에 따라서 지원키로 한 합의를 한국정부 스스로 지키지 않는
것이어서 문제이다.
지금 우리 정부는 북한이 6자회담의 합의사항을 이행하도록 압박하는데 별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언론이 북한특수(特需)라고 말할 정도로
전직 국무총리의 북한방문, 열린 우리당 의원과 경제인의 방북 러시가 본격화되고 있다. 8월 이전에 남북정상회담을 개성에서 추진하려는 의도인
것으로 분석되기도 한다.
바로 이 같은 정략이 1993년의 1차 핵위기를 14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연장시켜 왔고, 당분간 2차 핵위기도 결코 해소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는 1994년 북한이 남한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했던 말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로부터 십 수 년이 지난 현재 북한은 플로토늄에서
핵무기를 만드는 데 성공했고, 그 핵무기를 지렛대 삼아 지난 2월의 베이징 6자회담에서 약 20조원에 이르는 엄청난 지원 약속을
받아냈다.
회고해보면 북한은 1993년 3월 12일 핵확산금지조약을 탈퇴하며 한반도에 1차로 핵 위기를 일으킨 지 14년 만에 핵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고, 이를 무기로 또 다시 미국과 빅딜을 성사시켰다. 당시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을 탈퇴할 때만 해도 전 세계는 격렬하게 반응했고,
그 해 5월에 UN 안보리는 북한 핵사찰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북한은 결국 1994년 10월 제네바에서 합의문에 서명했다.
이때부터 북한에 대한 중유와 경수로 지원이 시작되었고, 한국은 경수로 건설을 지원하는데 1조 3,655억 원을 지원했다. 그리고 다시
북한의 핵실험 이후 미국이 중심이 된 국제사회는 지난 2월 베이징에서의 6자회담을 통해, 북한의 핵 페기를 전제로 매년 2조원 이상씩 지원하도록
합의했고, 그 돈은 어림잡아서 20조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그런데 한국정부는 엊그제 북한과 경협추진을 위한 합의문을 작성했다. 이 합의문 하나를 얻는데 언론은 2150억 원짜리로 묘사했다. 남한은
북한에게 쌀 40만t과 경공업 원자재로 2억3200만 달러, 우리 돈 2150억 원을 지원하게 된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돈을
지원하면서도 정부는 정작 북핵 폐기를 위한 2·13합의 이행과 연계하는 데는 실패했다는 점이다.
그뿐만 아니다. 사실상의 여당이 경제인들을 이끌고 대규모 방북을 기획하고 있다고 한다. 얼마 전 정부는 북한이 2·13합의 이행
시한(60일)을 지킬 것으로 예상해 중유 5만 t의 선적계약을 미리 했다가 계약 해지로 세금 36억 원을 날렸다. 그러고도 다시 쌀을 지원하게
되었다.
정부는 북한에 대해서만큼은 왜 그렇게 퍼주는 인심이 후한 것인가?
필자는 대북한지원이 긴장완화를 위한 초보적 진전임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우리 정부가 과연 북이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진지하고도 치열한 노력을 하고 있는 것 같지 않는 것이 우리의 걱정이자 고민이다.
우리가 해온 일은 플로토늄에서 핵으로 발전할 때까지 한국정부는 뒷돈 대기에 바빴다는 것뿐이다. 1990년대 플루토늄을 매개로 북한이
국가위기를 헤쳐 나갔던 방식, 그리고 14년이 지난 후에 핵으로 위기를 헤쳐 나간 북한의 외교술을 보면 그에 대한 대응책을 찾을 수도 있으련만
정부의 대북정책은 14년과 전혀 변한 게 없다
북한 핵에 인질이 된 대한민국 국민을 위해서 정부는 전략적인 접근을 해가야 한다. 특히, 대선거정국, 정권 이양기 일수록 원칙 있는
대북정책, 정파의 이익을 떠나 국민과 국가의 장래를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 그것이 정부와 안보관련 정책결정자들이 할
일이다. |